
하루가 멀다 하고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사건 추이(건수)를 봐도 2012년 263건 → 2013년 370건 → 2014년 519년 → 2015년 522건 → 2016년 556건 → 2017년 10월 기준으로 532건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작년 11월 15일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합동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과 실태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성폭력'의 개념은 구분이 필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은 ①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② 업무와 관련해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직장 내 성폭력은 ▲위계, 위력에 의해 상대방의 의사를 침해해 이뤄진 성 접촉(간음행위 필수) 행위로 ①과 ②의 요건만 갖추는 경우 직장 내 성희롱으로 간주된다.

<그림 1>의 2015년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실태조사(2015년)』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는 88%가 남성이며 회식장소(44.6%)와 직장 내(42.9%)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피해자의 대다수(78.4%)가 참고 넘어갔으며, 사내기구를 통한 공식적인 처리나 외부 기관을 통한 처리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직장 내 성희롱은 제대로 된 처리와 절차에 따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넘어가는 일이 많다.
최근 모 기업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처리하는 관리책임자인 인사팀장이 2차 가해자가 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인사노무 업무를 20년 해오면서 그 기사만큼 부끄럽고 참담함을 느낀 적이 없다. 인사팀장도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상태를 만들고 만 것이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조직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과 비슷하게 영화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 2001, 로버트 루게틱 감독, 리즈 위더스푼 주연)에서 로스쿨의 교수이자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법대생이자 인턴인 주인공 엘에게 추근대는 장면이 나온다. 실력으로 편견을 넘어서고자 했던 엘에게 이 일은 로스쿨을 그만두게 만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금발의 엘을 절망하게 한 직장 내 성희롱
의상을 전공한 엘은 오직 애인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에 들어갔지만, 그곳은 엘에게는 너무나 이질적인 곳이고 누구하나 금발을 가진 엘을 편견 없이 대하질 않는다. 하지만 엘은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경험과 장점을 살려 로스쿨 수업에 적응하고 수업시간에 망신만 당하던 신세에서 교수들의 칭찬과 관심을 갖는 자신만만한 학생으로 거듭난다.
실력으로 금발이라는 외모의 편견을 넘어서던 엘은 직장 상사이자 지도교수인 갤러 헨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동료 비비언 캔싱턴은 오히려 엘이 실력이 아닌 외모로 상사의 호감을 산 것으로 오해하고 만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과 동료의 오해 속에서 절망하던 엘을 다시 서게 만든 건 여성 지도교수의 조언과 조교인 에멧 리치몬드의 지지와 성원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해는 풀리고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추근대던 교수 대신 변호사로 재판을 이끈 엘은 마침내 승소하게 된다.
영화에서 엘을 가장 곤란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하고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직장 내 성희롱이다. 인턴자리에서 정식직원으로, 성공하는 변호사로 가는 길을 제시하며 추근거리는 갤러 헨의 모습은 금발의 엘에게 사람들의 편견보다도 더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작동한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인권보호, 조직 내 질서 유지, 우수한 여성 인력 활용 측면에서 등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또한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직장 내 발생했을 경우에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2차 피해가 적절하게 통제되고 가해자에게 처벌 등이 내려지지는 않지만 적절한 패널티도 주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1차 피해를 넘어 2차 피해가, 한 명의 피해자에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피해가 계속되는 등 끊이지 않고 문제가 발생한다.
제대로 된 교육 및 대응 강화 우선돼야
최근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벌칙이 강화됐다. 또한 최근 법 개정에 따라 벌칙이 일부 상향조정됐으나 보다 강화할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즉, 현행 과태료 수준을 상향하고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과태료 벌칙을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이는 법률개정 사항으로 조기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최근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성희롱 위반 벌칙은 <표 1>과 같다.
 이처럼 벌칙을 강화해 성희롱이나 성폭력 발생시 처벌을 하는 것도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교육과 회사 내의 자체적인 예방과 발생 시 대응 절차와 방법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희롱 피해자가 부담을 덜 갖고 손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사내 전산망 등을 이용한 신고센터 설치-운영을 의무화하거나 성희롱 고충처리담당자를 지정해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성희롱은 기업의 예방이 가장 중요하고, 피해자에게는 공정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하는 합리적인 대응 절차와 신뢰 있는 사내 처리 기구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다 인사노무담당자가 챙겨야 할 리스크다.
지금부터라도 형식적인 법정 의무교육, 면피용의 성희롱 예방교육은 그만두고, 상급자와 하급자 등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여 의식을 전환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안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위 글은 ‘월간HR Insight’ 박준우 노무법인 인재경영컨설팅 대표노무사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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