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지원서, 작년 양식 그대로 써도 될까

2018. 02. 28

정보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노동정책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슈가 된 것은, 청와대부터 솔선했더니 6명 전원이 여성으로 채용됐다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이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고용노동부가 표준이력서 양식을 배포해 개인정보 수집 최소화를 유도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당장 올해부터 성별도 학력도 나이도 묻지 않고 사람을 뽑자니 깜깜이 채용이 될까 두렵고, 작년 양식을 그대로 쓰자니 법령에 위반되는 항목은 없는지 찜찜하다. 바야흐로 채용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 입사지원자로부터 어떤 개인정보를 얼마나 수집해도 되는 걸까.

 

하나,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입사지원자로부터 어떤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느냐는 전형적으로 노동법과 개인정보법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준수해야 할 법령의 숫자만 꼽아보더라도 만만치가 않다. 

 

우선, 개인정보 문제에 있어 가장 근간이 되는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계약 체결 및 이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나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야만 개인정보 수집이 가능하다고 정하는 동시에, 동의 여부를 떠나 필요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수집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채용절차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정보라면 어떤 정도를 말하는 걸까(참고로, 회사가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의 수는 입사지원서 양식에 있는 칸 숫자와 일치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알다시피 채용절차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은 근로계약 체결이 아니라, 채용이라는 최종 결정을 하기 위한 사전 심사에 참고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의 입사지원서 양식에는 근로계약 체결에 필요한 정보까지 포함돼 있는데, 이런 일괄 기재가 편할지는 모르지만 불필요한 정보를 다량 수집하게 되어 법 위반 소지가 크다. 일반적으로 '필수 정보'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항목은 이름과 연락처, 주소, 경력 외에 많지 않다. 물론 직무별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항공기 조종사 채용에서 시력정보를, 여성전용 사우나에서 성별정보를, 기술개발 연구원에게 학력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필수 정보 수집에 가깝다. 반면, 단순노무직 채용에서 학력은 필수 정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에 나타난 고용노동부의 입장이다. 

 

주민등록번호는 입사지원자가 동의하든 안 하든 법률상 규정이 있어야만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이므로, 대부분 회사의 채용과정에서 수집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면, 민감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개인정보 보호법' 상 민감정보는 사상, 신념, 노동조합 및 정당 가입 이력, 정치적 견해, 건강이나 성생활 정보, 유전정보, 범죄경력자료로 정의되어 있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요구해 문제가 되기도 한 SNS 계정 자체는 민감정보가 아니지만, SNS 내용에 정치적 견해 등 민감정보가 포함된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민감정보도 동의가 있으면 수집할 수 있지만, 채용과정에서는 가급적 수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복지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특정 지원자를 우대하기 위한 민감정보 수집은 예외다. 

 

민감정보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많은 질의를 받는 항목이 바로 범죄경력이다. 본인 동의 없이 범죄경력을 조회하기는 어렵지만, 회사가 지원자에게 범죄경력조회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라고 요청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은 본인이 발급받은 범죄경력조회서를 본인 확인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주무 당국인 경찰청 또한 일반 회사 제출용으로 발급받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회가 허용된 학교-학원, 아파트 관리사무소, PC방 등을 제외한 일반 사업장에서는 입사지원자에게 범죄경력조회서 제출을 요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채용 시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해 노동관계 법령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고용정책 기본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병력 등을 이유로 채용상의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채용상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가 하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또한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이나 미혼 조건 등을 이유로 한 채용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수집을 하지 말라'고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등을 두지 않겠다면 굳이 수집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지 의문이다. 지원자들이 특히 이해하지 못하는 항목은 부모님 직업-학력, 본적-출생지, 재산 현황, 혈액형 등의 기재사항이라고 한다. 실무자에게 물어보면 '작년 양식에 있어서 그냥 두었다'거나 '차별할 의도는 없고 단지 참고자료로 쓴다'는 대답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필수 정보가 아닌 참고 목적에 불과하다면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불필요한 항목은 삭제하는 것이 좋다.  

 

둘, 개인정보 수집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어떠한 정보든(수집하지 말라고 권고한 정보라 하더라도), 일단 수집을 결정했다면 입사지원자로부터 적법한 동의를 받는 것이 안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 동의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2항에 명시된 대로 꼼꼼하게 받으면 된다. 채용절차 진행이라는 수집-이용 목적을 명시하고, 동의서 항목에 입사지원서에 기재된 모든 항목이 빠짐없이 들어있는지 재확인하며, 보유 및 이용 기간에 불합격자 정보를 채용절차 종료 후 얼마 동안 보관하는지 기재하고, 입사지원자에게는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으나 필수 정보 수집에 대한 동의 거부 시 지원할 수 없다는 등의 불이익을 알려주어야 한다. 불합격자에 대해서도 수시채용 인재풀로 사용할 목적으로 일정 기간 더 보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는 목적과 보유기간란에 명확히 그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또한, 전형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면서도 최소 수집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단계별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필기시험이 있다면 이름, 성별, 사진 등 신원확인을 위한 정보만 수집하고, 그 성적에 따라 면접 대상자가 결정되면 경력이나 포부 등 면접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로 수집하는 것이다.  

 

앞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원칙을 언급한 바 있는데, 입사지원서에 주민등록번호란이 없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대부분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지원서에 적어서가 아니라, 입사지원자들이 성적증명서나 자격증을 증빙으로 제출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그대로 노출한 채 전송함으로써 발생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전체 혹은 일부 마스킹하라고 사전에 명확한 안내 문구를 넣어두는 것이 좋다. 

 

필자에게 자문을 구한 회사 중에는 입사지원자들에게 면접비를 송금하기 위해 은행계좌번호를 수집하거나 자사 포인트로 면접비를 지급하기 위해 고객 ID를 수집한 경우도 있다. 면접비 지급은 가급적 현금이나 현물로 함으로써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 채용절차가 끝나면 미련 없이 버린다 

 

개인정보 파기와 관련해 '개인정보 보호법'은 '보유기간의 경과,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 달성 등 그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개인정보를 파기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때 '지체 없이'의 의미에 대해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은 채용절차 종료 후 '5일 이내'로 규정하면서, 다만 인재 DB 를 구축해 상시 채용을 하는 경우 별도로 동의받은 기간만큼 보관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작년부터 30인 이상 사업장에 시행 중인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채용 여부 확정 후 14일에서 180일 사이 기간 내에서 사업주가 정한 기간 내에 구직자가 채용서류 반환을 청구할 경우 그 청구로부터 14일 이내에 반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입사지원자 정보 파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기업 공채 종료 후에 해당 사이트가 해킹되어 2만여명의 학력, 경력, 가족관계, 자기소개, 사진 등 내밀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해 해당 업체가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에게 1인당 3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한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입사지원자 수천 명의 정보가 담긴 관리자 페이지가 고스란히 포털사이트 검색에 노출된 채로 한 달 이상 방치된 사례도 있었다.

 

일부 기업들이 불합격자 명단을 공유한다는, 이른바 '채용 블랙리스트'에 관한 언론 보도 또한 입사지원자 서류 반환과 정보 파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원인이 되었다. 채용담당자에게 파기를 꺼리는 이유를 물으면, 재지원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많다. 그러한 경우에는 수집 시부터 이를 명확하게 밝히고 재지원자 식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보관해야 할 것이다.

 

몇 달 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비율이 높았다. 요즈음은 합격률이 수백 대 1에 달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만일 채용 경쟁률이 300대 1인 회사가 부모 학력, 출생지, 혈액형과 같이 불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입사 지원서 양식을 쓴다면, 300명 중 합격자 1인을 제외한 나머지, 즉 회사의 잠재 고객 299명이 좋지 않은 인상을 받고 돌아서게 된다. 법도 법이지만 회사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주는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이제는 그만 '작년 양식'을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위 글은 월간 노동법률 김희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의 글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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